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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전동휠체어는 몸이다

작성자 정보제공담당 날짜 2026-03-04 10:02:30 조회수 10

▲검은 배경 위에 연두색 화살표 두 개가 원을 이루며 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그 원 안쪽 오른편에 보라색 휠체어가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 그림=김소하 작가
▲검은 배경 위에 연두색 화살표 두 개가 원을 이루며 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그 원 안쪽 오른편에 보라색 휠체어가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 그림=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몇 년간 사용하던 전동휠체어에 문제가 생겼다. 경사를 오르면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멈추고 싶을 때는 즉각 멈추지 않았다. 배터리는 눈에 띄게 빨리 닳았다. 하루의 길이가 물리적으로 짧아졌다. 오전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미 계기판은 바닥을 가리켰고, 남은 일정은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재배치해야 했다. 반복되는 불안정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어느새 일상의 리듬을 무너뜨렸다. 이동이 불안해지자 약속은 설렘이 아니라 계산의 대상이 되었고, 외출은 가벼운 선택이 아니라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전동휠체어는 나에게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몸’이다. 비장애인이 두 다리로 공간을 이동하듯, 나는 휠체어로 이동한다. 성능 저하는 기계 고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두 다리를 다치면 집을 나서는 일부터 버거워진다. 10분이면 가던 거리는 몇 배의 시간이 걸리고, 계단 한 칸은 벽이 된다. 약속은 미뤄지고, 출근은 망설임이 되며, 타인의 도움을 구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이동의 상실은 곧 삶의 속도를 잃는 일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기에 불편을 감수하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만약 길 한복판에서 휠체어가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도, 일터로 향하던 시간도 그 자리에서 끊길 것이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는 순간,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멈춰 설 수도 있다. 영화관 앞에서, 병원 입구에서, 혹은 빗속 도로 위에서. 그 순간의 정적은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라, 삶 전체가 멈추는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수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모터와 배터리 모두 교체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비용은 2백만 원. 그리고 수리 이후에도 같은 고장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큰돈을 들여 고쳤다가 다시 같은 불안을 마주해야 한다면, 그것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균열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새 휠체어로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가격표를 마주한 순간, 손이 떨리고 숨이 막혔다. 보조금이 일부 지원되지만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자부담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제도를 찾아보고, 지원 방안을 문의하고, 주변의 조언도 구했지만 뚜렷한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퇴직금 중도 인출’이 떠올랐다. 위급한 상황이고 노동으로 쌓은 돈을, 다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휠체어 구입에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가능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제도의 벽은 높았다. 현행 규정은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전세금·임차보증금, 6개월 이상 요양, 파산·개인회생, 천재지변 등의 사유에만 중도 인출을 허용했다. 나에게 전동휠체어 성능 저하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사실상 재난과도 같다. 그러나 제도는 이를 긴급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체 일부와 다름없는 장치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그것을 단지 ‘보조기기 고장’으로 분류한다. 노동은 일하는 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터에 도달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전 과정이 노동이다. 이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은 지속될 수 없다. 퇴직금은 그 노동의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다면 그 돈을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신체의 일부, 곧 전동휠체어 구입에 사용하는 일이 왜 사적 소비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장애인에게 이동은 생존이자 노동을 떠받치는 전제다. ‘일할 수 있는 몸’을 유지하는 문제를 긴급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순간, 제도는 이미 특정한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걸을 수 있는 몸을 전제로 한 규정 속에서, 바퀴로 움직이는 몸은 늘 예외로 남는다. 퇴직금 중도 인출 사유에 ‘노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이동 보조기기 구입’을 포함해야 한다. 그것은 특혜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전동휠체어를 ‘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제도 안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언어는 몸이라 말하면서도, 행정은 여전히 그것을 보조기기로만 분류한다. 몸이라 부르되, 몸으로 대우하지 않는 모순이 그사이에 놓여 있다. 제도는 중립적이지 않다. 언제나 어떤 몸을 기준으로 설계된다. 지금의 퇴직금 규정은 걸을 수 있는 몸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바퀴로 움직이는 몸의 위기는 긴급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다. 전동휠체어는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으로 가는 통로이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며, 투표소로 향하는 경로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닿기 위한 물리적 조건이다. 누군가에게는 두 다리로 충분한 거리지만, 나에게는 바퀴가 있어야만 닿을 수 있다.

퇴직금은 내가 일해 온 시간의 무게다. 그 시간을 이어가기 위해 쓰겠다는 선택이 왜 허락되지 않는가.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비용을 사적 소비로 분류하는 순간, 제도는 이미 노동권의 조건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로 “전동휠체어는 몸이다”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 말은 더 이상 비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인정하듯,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몸의 일부인 휠체어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출처:더 인디고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