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일 만 65세가 되는 김홍기 씨는 지난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은평지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생일이 지나기 전 노인장기요양 인정조사를 받으라는 안내였다. 그 순간 홍기 씨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기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온전히 이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홍기 씨와 장애노인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은평지사 앞에 모였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노인연대(아래 전장노련) 등 장애인권운동단체들은 22일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만 65세 이후에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 특성을 고려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촉구했다.

22일 오후 1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은평지사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노인연대 등 장애인권운동단체들이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장기요양등급 판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노인연대
법 개정에도 내년 7월 시행…그전 65세 되는 장애인은 사각지대
지난 4월 23일, 만 65세가 된 장애인도 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중 원하는 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 시행은 2027년 7월부터다. 이에 따라 김홍기 씨처럼 법 시행 전에 만 65세가 되는 1962년 6월 30일 이전 출생 장애인들은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자립생활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현행 제도에서 장애인은 만 65세가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심사를 받는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못하면 기존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지만, 등급을 받으면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두 제도의 목적과 지원 범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생활과 직장생활 등 삶 전반을 지원한다. 반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신체활동과 가사활동 등을 지원한다.
장기요양보험급여 중 재가급여는 가정에서, 시설급여는 요양시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 이처럼 지원이 가정이나 시설 내 활동에 집중돼 있어 학교와 직장에 다니거나 외출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받기 어렵다.
지원 시간에도 차이가 크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의 추가 지원을 받으면 하루 최대 24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지만, 장기요양서비스는 하루 최대 4시간에 그친다. 이처럼 제도가 전환되면 장애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시간과 범위가 줄어들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제약받을 수 있다.
“나이 들었다고 장애인이 아닌가”…활동지원 선택권 보장해야
김홍기 씨는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것뿐인데, 만 65세가 됐다고 활동지원서비스 대신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으라고 한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장기요양 이용 시간에 따라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면 집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가 들었다고 내가 장애인이 아니란 말인가. 나의 장애를 부인하지 말라. 나는 장애인이자 노인이다. 활동지원서비스와 장기요양서비스 중 무엇을 이용할지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홍기 씨가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노인연대
최용기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홍기 형님은 25년간 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친구와 동료를 만나고 권익옹호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남은 인생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앞으로는 집구석에 있으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시설에서 자신의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살다가 이제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다시 집 안에 머물며 살라고 하는 것”이라며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싶은 사람에게 왜 원치 않는 요양등급을 판정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2027년 7월부터 선택권을 보장받고, 누구는 그전에 만 65세가 된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장애인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계적 조사 아닌 장애 특성 고려해 ‘등급 외 판정’해야”
박미주 전장노련 간사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으로 전환되더라도 ‘보전급여’로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을 보충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법적 근거가 없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 간사는 2024년 대법원 판결로 보전급여 운영 방식의 위법성이 확정됐으며, 고등법원 판결문에도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입법 취지는 활동지원급여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 없이 활동지원 시간을 임의로 삭감하고 분절하는 보전급여 방식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박 간사는 “그렇기에 은평지사가 장기요양 등급 인정 처분을 내린다면 그 자체가 위법한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요양기획실과 면담했을 당시, 공단은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의 활동지원 수급권 보장 요구를 확인하고 장애 특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판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은평지사는 이 약속을 현장에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장기요양 조사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 먼저 활동지원서비스를 유지할 의사가 있는지 당사자에게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계적인 조사가 아니라 등급 외 판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당사자의 자립생활과 수급권을 보장하는 적법한 행정처분”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이후 전장노련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은평지사는 면담을 진행했다. 전장노련에 따르면, 은평지사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면서도 지사 차원에서는 관련 내용을 본사에 전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밝혔다. 전장노련은 장애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운 일과 노화에 따른 기능 제한을 구분해야 한다며, 인정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의 활동지원서비스 유지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판정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출처 : 비마이너 원문보기